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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와 범려의 사랑의 도피처, 가흥의 범려호와 김구 선생 피난처

항주,소주,가흥,소흥2008

by 비륜해 2014. 6. 30.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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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려호 
 
 
오늘은 드라마 이야기를 아니할 수 없겠다. ^^
중국 역사드라마 와신상담.
화려한 캐스팅과 HD 회색빛 화질, 화려한 의상과 소품들을 눈빠지게 보다 나도 모르게 빨려들어간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범려(가일평)' 다.
 
초나라 출신인 범려는 30세가 되기도 전에 '군사'라는 자리에 올라 구천을 보좌했고,
월나라가 오나라에 대패한 것을 훌륭한 지략으로 월나라를 다시 패권국의 자리에 올려준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진심은 언제나 '초나라'출신이라는 굴레에 발목이 잡혔다.
(범려가 울 때마다 나도 따라 울었다 ㅠ,.ㅠ)
범려는 월나라가 결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곳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바라고 바라던 월나라가 승리하는 날 서시와 함께 월나라를 떠나기 위해서 그녀를 찾는다.
하지만 서시는 궁안에 장작을 쌓아놓고 죽을 준비를 하고 범려를 맞이하였다.
 
범려가 함께 떠나자고 하자, 서시는
"저는 이미 예전의 서시가 아니라, 과거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라며 눈물을 흘리며 거절한다.
범려는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해 줄 것이며,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하자,
서시가 자조하며 언제까지 기다릴 수 있냐 묻는다.
범려는 서시의 곁에 앉아 진지한 얼굴로 손을 꼭 잡으며,
"평생... 이정도면 충분하느냐? (一辈子。 够不够?) " 라고 한다. 
서시는 범려의 진심을 읽고 감동한다.
나도 감동했다 ㅠ,.ㅠ  크헉~
 
이렇게, 범려는 사랑하는 여인 서시를 데리고 멀리 사랑의 도피(?)를 하는데(거절할 수 있는 여자가 몇이나 되리!)... 그곳이 바로 이 범려호다. 범려호는 '오호' 라고도 한다. 
 


  
 
범려호는 중국 가흥(嘉興)에 위치하고 있으며, 호수의 길이는 100M이고 폭은 15M, 넓이는 5351평방미터다. 본래는 더 큰 것을 지금은 귀퉁이만을 보수하여 개방하고 있다.
범려호는 서시의 집이라고도 일컬어 지는데, 서시가 죽은 곳이라고도 전해진다.
서시의 묘를 이 호수에 만들었다고 한다. (합려도 그렇고 그 나라때는 수장이 풍습이였나보다.) 

호수 서북쪽에 서시의 화장대가 있다는데, 우리는 보지 못했다;; 서시가 매일 화장을 한 후에 연지물을 호수에 버리면 호수물 색이 연지색으로 변하고, 호수안에 고동이 연지물을 먹고는 오색고동으로 변했다고 한다.
또 서시는 몸이 약해서 이 범려호의 연밥 속의 심을 달여 먹었다는데, 음.... 호수물을 보니 먹고 싶지는 않다. 그 때는 깨끗했겠지?
 
이곳에는 남송(1205)때 지은 진명사(金明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본래 세 채였으나 지금은 대전(大殿) 한 채만 만 남아있다. 지금은 고전연극을 연습하는 곳으로 쓰이고 있다. 2000년부터 민간에 개방하였는데, 사람도 별로 찾지 않고 조용조용하다.
 
 


 서시의 석상
 


 
저기 방생지 (放生池) 라고 씌여진 글자는 명나라 때 씌여진 것이라고 한다.
 
 
여기까지 범려호 여행 끝!
 
범려호 건너편에는 굉장히 잘 꾸며진 관광단지가 있는데 (내부에는 모두 한글 안내판이 있다), 여기 중간부에는 '김구 선생 피난처' 가 자리하고 있다. 1932년 윤봉길 의사의 폭탄 투척 후 김구 선생께서는 일본군의 추적을 피해 도망다니기 시작했는데, 그 때 약 2년동안 일본군의 추적을 피해 살던 곳이라 한다.
 
지금의 이 대단지는 가흥시에서 지원을 받아 만들어졌다.
가흥에는 효성과 한국타이어 공장이 들어서 있고, 강릉시와도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우리나라와 여러모로 인연이 있는 도시이다. ^^
 
중국은 땅덩이가 워낙 커서 그런지 마치 하나의 도시가 하나의 나라같은 느낌이 든다. 그만큼 분위기가확확 다르다. 북경, 상해, 항주 같은 대단위 도시가 아니면 아직은 개발이 덜 되어 50-60년대 우리나라같은 느낌이 드는 도시가 많아, 이름없는 도시는 웬지 가기가 꺼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나중에 도시의 사는 모습을 쫙 정리를 하겠지만, '가흥'은 정말 의외로 너무나도 쾌적하고 세련된, 살기 좋은 도시였다. 중국사람들이 노년에 살고 싶어하는 도시가 '항주'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라면 '항주'보다는 '가흥'을 택할 것 같았다. 
 
 

 

김구 선생님 동상, 안경을 벗으셨다.
 





여기서 도 주공 유지는 범려를 말한다. 범려가 월나라를 떠난뒤에 범려라는 이름을 버리고, 양식사업을 했는데, 돈을 엄청나게 벌었다고 한다. 그 때 도 주공이라고 불리웠다고....
김구선생님과 같은 것을 봤다니, 기분이 묘했다.
 
 






 
김구 선생 피난처. 이층으로 되어 있다.
 
여기 침실 구석 바닥을 보면 뚜껑이 있다. 누가 오면 얼마든지 이 뚜껑을 들어서 아래로 뛰어내릴 수 있게 되어 있다.

 - 2008년 중국 여행 포스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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