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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의 명지, 호구산

항주,소주,가흥,소흥2008

by 비륜해 2014. 6. 30.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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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蘇州)에 위치한 호구산은 중국 10대 여행지 중 하나로, 세대를 뛰어넘는 다양한 유적지를 포함하고 있다. 호구의 역사는 약 2500년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 곳은 원래 춘추전국시대 오나라 왕 합려의 별궁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기원전 496년에 합려가 월나라왕 구천과의 전투에서 칼에 맞는 부상을 당해 죽은 것을(지금으로 치면 파상풍으로 죽었다), 그의 아들 부차가 합려를 이 곳에 3000천자루의 검과 함께 매장하였다. 때문에 오왕 합려의 장례후 수백년간 월왕구천, 진시황, 동오의 손권등 모두 이 검을 얻기 위해서 땅을 팠으나, 아무도 찾지 못하고 헛수고만 하고 돌아갔다는 다소 슬픈(?^^;;; )이야기가 전해진다.

 

소주는 원래 바다였고, 이 호구산은 섬이어서 여기에 올라가면 바다가 훤히 보인다 하며 호구산의 본래 이름은 '해통산(海通山)'이였다. 오왕 합려의 장례후에 백호(白虎)가 그 위에 올라가 울었다고하여 호구(虎丘)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지금 현재 언덕의 높이는 겨우 34.3M라지만 주변에 산이 없는 관계로 매우 먼 거리에서도 호구산과 호구탑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대게는 산에 들어가야 절이 나오는데 이곳은 절 안에 산이 있다. 무슨일인고하니~ 운암사에 새로 부임한 스님이 있었는데, 이 스님은 문장(文章)과 서법(書法)을 좋아해서 당대 유명한 사람들의 글씨체를 호구산의 나무와 돌에 남기고 싶어했다. 스님은 당시 안진경(顔眞卿)의 솜씨가 가장 좋다는 것을 알고는 일편단심 안진경의 글씨를 얻길 원했다.

어느 날 안진경이 호구에 놀러온 것을 스님이 발견하고는 안진경에게 호구를 보여주었다. 안진경은 검지의 절경과 오왕 합려의 묘라는 소리에 완전 빠져들었다.

스님은 기회를 잡았다 생각하고는 안진경에게

"대인의 재능이 출중하시어 1자(一字)에 1천금(一千金)을 버신다 들었습니다. 노승이 '호구검지'라는 4글자를 요청해도 되겠습니까?" 라고 물었다.

안진경이 이를 듣고는 "1자에 1천금이면 4자면 4천금인데, 4천금을 어찌 갚으시려고?" 하자,

스님이 떠듬떠듬거리며 "지금 사찰엔 사람이 별로 없어, 은자 하나 나올 곳이 없습니다. 이 절을 담보삼아 내년에 갚는 것은 어떠합니까?"

안진경은 '하하'하며 크게 웃고는 "이 조그만 절이 얼마나 한다고 그러시오?, 필요없소, 혹시라도 이 호구라면 모를까, 이걸 잡히는 게 어떠하오?"라 하자,

스님이 속으로 '안진경, 이놈아! 정말 된놈이로세! 이런 일엔 머리도 잘 돌아가는구나! 이 절은 산안에 있는데 니가 호구를 가져가면 이 절마저 한 입에 먹겠다는 소리 아니냐! 안돼! 안돼고 말고! 하지만 안진경이는 평소 쉽사리 글을 써주지 않으니, 일단 글씨는 받고 보자' 하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안진경에게 "그럼 이 호구를 잡히겠습니다, 어서 써 주시지요"

안진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약속한 거요!" 라며 종이에 글씨를 써주었다. 얼마되지 않아 스님은 '호구검지'라는 글자를 벽에 새겼다. 오는 손님마다 호구검지의 글씨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스님은 만족했지만 호구산을 안진경에게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항상 불안했다. 게다가 안진경이 태수에서 형부상서로 지위가 올라갔다는 말에 불안감은 한층 더 심해졌다.

스님은 '안진경은 절이 싫다하였으니 내가 호구산을 절안으로 들여버리면 가져가진 않겠지'라는 묘안을 짜 냈다. 그래서 스님은 호구산 주변에 작은 내를 만들어 호구산 주변을 감싸고 제일 밑에다 문을 만들어 '운암선사(雲巖禪寺)'라고 썼다. 이렇게하여 호구산은 운암사안에 위치하게 되었다.

다음해에 안진경이 일로 소주를 방문했다가 호구로 발을 옮겼다 절이 아래로 내려오고 호구산이 안에 들어가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크게 웃었다 한다.  

 

 

 



이건 시검석(試劍石) 이라는 건데, 오왕 합려가 검을 바위에 휘둘러 검을 시험해 보았는데, 그 때 이렇게 쪼개진 것이라고 한다.   



 

 

전경 사진이 없군..ㅜ ㅜ

여기 큰 돌판 바닥이 있는데, 이 장소는 오왕 부차가 합려를 장례시키면서 3000자루의 검과 부속품들을 함께 묻은 곳이다. 부차는 검이 도굴될 것을 우려하여 공사에 동원된 천명의 일꾼들의 입을 막고자했다. 그래서 일꾼들에게 이 돌위에서 술을 먹이고 군사들을 시켜 모두 죽여버렸다. 그 때 흐른 피가 돌에 베여 지금도 비가 오면 핏물이 줄줄줄 흘러내리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사진에서도보면 돌 자체가 약간 붉은 색을 띄는데 이는 2500년전의 일꾼들의 피가 벤 것이 아니고^^; 돌 자체가 붉은끼를 띄는 산성을 띈 유문암()이기 때문이란다.

그래도 난 전설이 좋으니깐, 일꾼들의 피라고 믿으련다^^

 

 


 

천인석 위에 세워져 있는 비석이다.

부차도 귀신은 무서웠나보다^^;

넋을 기려야지!

나무아비타불 관세음보살....

 

 

 



 

토요일이라 사람이 많아서 사람없는 호구검지(虎丘劍池)를 찍을 수가 없었다^^;

천인석 앞쪽으로 보면 '호구검지'라는 4글자가 써 있다. 앞서 말한 그 안진경의 글씨이다.


앞에 호구(虎丘)라는 글자가 세월에 닳아 없어지자, 명나라 때 소주의 태수 마지준(馬之駿)의 명령으로 당대의 유명한 조각가 장중옥(章仲玉)이 앞에 호구를 다시 조각했는데, 안진경의 글씨만큼 좋지는 않았단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이것더러 가호구진검지(假虎丘眞劍池)라고 하는데 가짜 호구, 진짜 검지라는 뜻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다시보니 검지가 더 멋있는 것 같기도한듯?;;;

가호구진검지(假虎丘眞劍池)에는 또 다른 뜻이 있는데, 호구산은 인위로 만들어 졌기 때문에 가호구이고, 검지는 자연적으로 생성된 것이기 때문에 (호수를 판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것이라 한다) 진검지라한다. 일종의 언어유희?!



 




낭떠러지 감상!

여기가 바로 오왕 합려의 묘의 입구라고 알려진 곳이다.

검을 찾기 위해 파고파고 또 파고... 지금은 저렇게 막아두었다.

정말로 저 곳을 파면 오왕 합려의 무덤이 나올까?

 



 


 


 

여기저기 문장가들의 글씨가 보인다. 요즘말로 하면 스님은 수집광?! 

 

 



 

 


 


사진 상단에 있는 다리는 오나라 부차에게로 시집간 월나라 꾸냥 서시가 좋아하던 다리란다. 서시는 저 다리 위에서 연못에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는 것을 좋아했다한다. 난간도 없이 ㅠ,.ㅠ 그래서.....!



 


 

짜잔~

부차가 보기에도 위험해 보였는지 서시를 위해 다리위에 이런 구멍을 뚫어주었다고 한다. 요홋!

로맨틱 부차다 ^^~

아, 그리고 이 구멍밑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면 10년이나 젊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단다.

얼굴 볼 준비 되셨는가요?! 

 

 

 

 

 




 

이 것은 호구산의 백미!

호구탑이다

'뭐야, 왜 약간 비스듬하게 사진을 찍은거야?'하고 탑을 똑바로 보기 위해 고개를 약간 기울이신 분들도 있을까?

아닙니다ㅠ0ㅠ 전 똑바로 찍었습니다! 탑이 기울어진 것이라구욧!

이게 바로 동양의 '피사의 사탑'으로 불리는 호구탑이다!

 

호구탑(虎丘塔)은 오대십국시대때 후주(後周)에서 지은 불탑으로, 959년부터 지어서 981년에 완공한 약 1000년의 역사를 지닌 탑이다. 강남(江南)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규모가 큰 탑이다. 7층 8각탑이고 높이는 47.8M, 최대각도 약 3.59분으로 기울어졌다.

 

웅장하고 남성미가 철철넘치는 멋스러운 탑이였다.

 

 

 

소주 호구탑 여행 끝~  다음편에 계속 ^^;



- 본 포스팅은 2008년 여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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